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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협상

     

    2018년 9월 개봉한 영화 《협상》은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협상 스릴러 장르다. 치밀한 심리전, 한정된 시간, 모니터 너머의 납치범과의 두뇌 싸움. 오직 ‘대화’로 사건을 풀어가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익숙한 액션이나 추격전 대신, 한 공간에 갇힌 듯한 정적 속 긴장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현빈과 손예진의 첫 스크린 맞대결로도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 둘이 로맨스로 만난 게 아니라, 인질범과 협상가로 대치하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신선하다.

    1. “그는 왜 사람을 죽이지 않고, 방송을 택했는가?”

    《협상》의 시작은 서울 외곽 한 주택에서 벌어진 인질 사건이다. 경찰 협상가 하채윤(손예진)은 본래 출동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지만, 인질범이 경찰 내부 인물과 얽혀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현장에 투입된다.

    그러나 협상은 실패로 끝나고, 인질은 사망한다. 하채윤은 이를 트라우마처럼 안고 살아간다.

    며칠 뒤, 그녀에게 또 다른 호출이 들어온다. 이번엔 태국 방콕에서 벌어진 한국인 납치 사건. 납치범은 경찰과 직접 접촉하지 않겠다며, 유일하게 하채윤을 협상가로 지목한다. 화상 통신을 통해 접속된 화면 속 인물은, 수수께끼 같은 남자 ‘민태구’(현빈).

    태국 현지에서 무기 밀매와 범죄에 연루된 민태구는, 단순한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요구 조건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하채윤에게 “진실을 파헤쳐보라”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진다.

    2. 오직 모니터로만 대화하는 납치범, 그리고 시간

    《협상》은 다른 스릴러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납치, 살인, 경찰… 익숙한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진행은 오직 협상실 내부, 그리고 모니터 너머 화면에서 벌어진다.

    즉, 대부분의 영화가 ‘현장감’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면, 《협상》은 현장을 보여주지 않고도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하채윤은 제한된 시간 안에, 민태구가 요구하는 내용을 파악하고, 인질을 구출해야 한다. 하지만 민태구는 이렇다 할 요구 조건도 내놓지 않고, 그저 미소를 머금고 질문만 던진다.

    “하 협상가님, 당신은 왜 여기 있죠?” “당신들, 정말 사람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나요?”

    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관객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한 가지 의문에 빠진다. “정말 이 사람이 단순한 범죄자일까?”

    3. 진짜 협상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

    민태구는 경찰, 외교부, 군, 심지어 청와대까지 연루된 거대한 부패 스캔들의 퍼즐을 하나씩 풀어간다.

    그는 단순히 돈이나 신변 보장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특정 인물들을 지목해 "그들의 죄를 밝히라"라고 한다.

    하채윤은 처음엔 그를 단순한 미치광이로 취급하지만, 그의 말 속에서 일관된 진실의 흔적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점차 그녀는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며,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국가 권력 내부의 어두운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협상가로서의 임무와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하채윤은 점점 혼란에 빠진다.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4. 손예진과 현빈 – 정적인 전투 속 감정의 균열

    《협상》은 배우들의 연기력에 크게 의존한다. 특히 얼굴만 마주한 채, 화면으로만 대립하는 두 배우의 밀도 높은 감정 교환은 이 영화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손예진은 절제된 감정 연기로 ‘냉정함’과 ‘분노’, ‘죄책감’을 균형 있게 표현하며, 협상가라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현빈은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냉소적이고 날 선 인물을 연기하며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그의 대사 톤, 시선, 표정의 미세한 변화는 ‘그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를 관객에게 끊임없이 추측하게 만든다.

    이 두 사람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주고받는 정적의 대결은 화려한 액션보다 더 치열하고, 더 몰입감을 준다.

    5. “당신이 믿는 정의는 과연 진짜입니까?”

    《협상》은 단순한 인질극을 넘어, 정의와 시스템, 권력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건드린다.

    민태구는 범죄자이지만, 그가 드러내는 사실이 모두 거짓은 아니다. 그는 분명히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고, 그 분노는 단지 복수심이 아니라, 세상이 외면한 진실을 폭로하고자 하는 의지로도 읽힌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극이나 감정 자극 영화가 아닌, 윤리적 딜레마와 정서적 갈등을 정중하게 다룬 스릴러가 된다.

    6. 관객의 반응 – 호불호는 갈렸지만, 신선했다

    《협상》은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신선하다’는 평가와 함께, ‘답답하다’는 의견도 동시에 받았다.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움직임이 거의 없는 설정, 말로만 이어지는 전개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처음엔 몰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서서히 쌓여가는 정보와 감정선, 그리고 후반부의 급격한 반전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해선 호평이 대부분이었다. 현빈의 ‘빌런 연기’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고, 손예진은 ‘조용한 분노’를 품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이끌었다.

    7. 결론 – 협상은 말이 아닌 진심으로 완성된다

    《협상》은 전형적인 한국형 스릴러에서 한 걸음 벗어난다. 누군가를 쫓거나, 총을 쏘거나, 폭발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긴장감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 안에 숨겨져 있다.

    이 영화는 단지 시간을 끄는 협상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 그 자체가 협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련된 영상미, 감정선에 충실한 연기, 묵직한 주제를 품은 대사들. 《협상》은 흥미로운 시도로 기억될 작품이며, 지금 다시 보아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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